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른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 거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만한 곳이라면 그들도 올라설 수 있는 곳입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꾼이 이해할 만한 인격이라면 틀림없아 수준이 낮을 겁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꾼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과 동등하다면 창작을 해봤자 역시 동등한 창작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도 나옵니다.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능 것은 어떤 면에서 당영한 일이지요.
누구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학교를 같이 졸업한 사람이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학교의 졸업생이기 때문에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의 형식이 비슷한 것을 교육의 실체가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같은 대학의 졸업생이 동일한 수준이라면 대학의 졸업생은 죄다 후세에 이름을 남기든지 아니면 죄다 사라져야 하는 것이지요. 자신만이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기를 쓴다면 설령 같은 학교 졸업생이나 그 밖의 사람들은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미 그런 가정을 하고 있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은 같은 학사라고 해도 크게 차이가 난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닙니까?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자부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번민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따라서 구애받는 것에서 해탈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구애받는다고해 해도 자신은 구애받지 않는 것이 한 가지 해결책이다. 사람들이 곁눈질하고 귀를 쫑긋해도, 냉정하게 평가해도, 심하게 욕해도 자신만은 구애받지 않고 척척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제 2의 해탈 방법은 보통 사람의 해탈법이다. 보통 사람의 해탈 방법은 구애받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구애받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운 지위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 고통이 생겨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주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세속에 아첨하고 일세에 동조할 마음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사랑은 사치다. 아름다움에서 벗어난 것은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인간의 교제에는 항상 '이 사람은?'이 생략된다. 생략된 이 사람은?이 거듭되면 싸움도 하지 않고 절교를 하게 된다. 사이좋은 부부, 사이좋은 친구가 마음속에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을 조금씩 거듭해가다 보면 결국 서로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게 된다.
속박이 없는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은 이미 자유를 위해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자유를 어떻게 능숙하게 사용할까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권리이자 동시에 큰 책임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이상을 갖지 못한 사람의 자유는 타락입니다.
일을 쉽게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이 행복한 것입니다.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요행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 행복합니다.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에 따라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고, 발전의 길이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사실상 여러분은 이상을 갖고 있지 않아요. 집에서는 부모를 경멸하고, 학교에서는 교사를 경멸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신사를 경멸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경멸하는 것은 식견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경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대한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이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현대의 청년은 도도하게 날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수명을 알지 못합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노력과 돈의 관계에 관해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걸맞는 학문을 하면 그에 걸맞은 돈을 벌 수 있는 전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학문은 돈에서 멀어지는 기계입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목적으로 하는 실업가나 상인이 되면 됩니다. 학자와 상인은 완전히 별개의 인간으로, 학자가 돈을 기대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인이 학문을 목적으로 견습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학문, 즉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과 생활의 자유, 즉 돈이 있다는 것은 서로 독립해 있어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학자이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학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학자는 돈이 없는 대신에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고, 상인은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돈을 법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를 즐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돈을 벌 시간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공평해서 한 사람에게 돈도 벌게 해주고 동시에 문화도 즐길 수 있게 편애하지는 않습니다.
깜짝 놀란 도야 선생을 남겨두고 다카야나기 군은 밤의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자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요양지에서 가져오는 대신, 그보다 더 위대한 인격론을 품속에 넣은 채, 이를 자신의 친규인 나카노 군에게 건네, 나카노 군과 그 부인의 호의를 갚고자 했다.
도야와 나카노는 이미 세계가 완성된 사람이며 우열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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