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삶의 부족한 것을 모두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저 욕망이라는 이름으로나 남게 될 뿐이다. 반면 도련님은 이러한 욕망에서 자유롭다. 부족한 것을 모르기에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싸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도련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욕심과 욕망의 집, 그 문밖에서 그저 지켜볼 뿐이다. 세상 안에 존재하나 세상 바깥에 서 있는 것이다. 문제는 도련님이라는 정체성을 얻게 해준 환경은 과거일 뿐, 도련님은 현실에 산다는 것이고, 인생은 쉬지 않고 흘러 시간이 되면 모든 것이 함몰된다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순응과 관대함 위에 정직함이라는 무게를 더한다.
욕망의 상대적 입장에서 도련님의 현실은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실패한 인생으로 묘사되곤 한다. 특히 경제적인 부가 성공한 인생의 정답처럼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대적 박탈감에서 발현된 욕망의 전차는 도련님의 인생을 조롱하기 마련이지만. 도련님의 과거 부유한 시간은 그러한 현실을 무력화시킨다. 돈이라는 것은 삶에 있어 다른 가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윤리나 도덕, 체면 같은 것들에 비하면 하잘것없다는 것을 도련님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좋으나 전부는 아니라는 정체성이 도련님의 현실을 지배하는데, 부가 절대적인 선이나 미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과거의 시간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바깥에 서 있는 도련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도련님에게 이제는 쓸모없어진 체면이나 솔직함이 가치 판단의 핵심적인 잣대이다. 도련님은 왜 뒷짐을 진 채 세상의 바깥에 서 있는가. 여기의 세상이 이미 출세와 부, 허위와 위선을 동력 삼아 구동되고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면 설명은 가능해진다. 이제 세계에서 쓸모없어진 것으로 절대적인 선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 아니 그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 소설 '도련님'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물음인 것이다.
도련님은 외롭다. 정직하기 때문에, 솔직하기 때문에, 관대하기 때문에, 순응하기 때문에 외롭다. 지금의 세상은 정직하면 손해 보는 곳이고, 솔직하면 비난받는 곳이고, 관대하면 무시당하는 곳이고, 순응하면 빼앗기는 곳이다. 도련님은 세상에서 손해 보고,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빼앗기면서도 관대하다. 이는 전혀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의 다른 마음이다. 인간을 윤리나 도덕, 예의 안에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슬픈 일이면서도 망가진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 와카, 와비사비) (0) | 2023.12.02 |
|---|---|
| 요시모토 바나나 - 키친 (0) | 2023.11.30 |
| 나쓰메 소세키 - 태풍 (1) | 2023.11.26 |
|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0) | 2023.09.19 |
| 쓰가루 (다자이 오사무) (0) | 2023.01.26 |
댓글